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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칼럼

함께하는 이웃의 감사와 고마움

함께하는 이웃의 감사와 고마움

하재찬 충북사회적경제센터 지원국장

 
 

우리나라 대표 효녀 심청! 심청이가 효녀가 될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심청이는 심봉사의 딸이다. 그런데 심청이를 딸로 생각하는 길동이 엄마, 순이 엄마, 철이 엄마가 마을에서 함께 살았다. 내가 젖먹인 심청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랬을까?

밥 지을 때 조금 덜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했던, '좀도리' 문화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예전의 농촌은 두레와 품앗이가 있었다. 아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길동이 논에 모내기를 할 때 순이네, 철이네 등 마을(사람)이 함께 모내기를 했다. 순이네 할 땐 철이네와 길동이네 등 마을(사람)이 함께 모내기 한다. 추수할 때도 중간에 태풍으로 벼가 쓰러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길동이네 논은 누구의 논인가? 길동이네 논이자 우리 마을(사람) 논이다. 마을에서 함께 모내기하고 벼베기한 어떤 사람이 어렵고 힘들면, 돕고자 우리 엄마들은 '좀도리'를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쌀을 보며 마을에서 함께하는 이웃의 감사함과 고마움이 '좀도리'를 하게 한 것은 아닐까?

우리 사람이 의존할 수 밖에 없기에 사람을 뜻하는 한자는 서로 기댄다는 의미로 [人]자로 상징화 되었다. 사람이 서로 기대어 의존하고 사는 일상의 삶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시장자본주의는 이 의존을 사람에서 '자본'으로 옮겨 놓았다. 자본에 의존하는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돈에 매수된 정치인들, 돈으로 매점매석하는 비례대표와 국회의원, 성폭행, 묻지마 폭행, 살인, 강도. OECD에서 우리나라가 8연패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살율이다. 이것으로 모자라 계속해서 높아지는 자살율.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더 이상 자신이 기댈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많은 돈이 있었으나 기댈 사람이 없어서 투신 자살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 학교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해 줄 사람이 없어서, 기댈 사람이 없어서 자살하는 우리의 여리고 여린 청소년들. 돈이 많고 적고 관계없이 대부분 기댈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국민소득이 1960년 1천달러였던 우리나라가 2012년 3만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자본(돈)이 30배 많아졌다. 그러나 기댈 사람은 30배 줄어든 듯하다. 이윤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자본에 기대어 있는 기업. 이런 기업들이 경쟁하며 끊임없이 자기증식으로 커가는 (자본)시장. (자본)시장이 지배하는 이 외롭고 외로운 우리 사회. 이런 사회를 다시 (마을)사람에 기대어 사는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하나 둘 일어나고 있다.

아직은 서로의 경험과 생각에 대한 소통이 부족해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처럼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부족함을 인정하며 사람을 중심 가치로 협동(노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우리 마을에 하나 둘 일어나고 있다.

길동이네, 순이네, 철이네가 있는 마을에서 키운 심청이가 효녀가 되었듯이, 길동이네, 순이네, 철이네가 서로 두레와 품앗이란 것을 마을에서 실천하며, '좀도리'라는 나눔의 문화를 만들었듯이, 이러한 마을(사람)을 키우고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의 활동들이며 노력들이다. 이 노력을 마을(사람)이 함께해야 더욱 예뻐지고,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서로 사람에 기대는 사람다움이 가득한 마을(사람)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는 이(기업)들이 있다. 이러한 노력이 잘 이루어진다면 마을(사람)은 좀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 마을과 사람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서로 기대며 사람 귀한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길동이 엄마가 되고, 네가 순이네 아빠가 되고, 당신이 철이네 형이 된다면 지금 우리 마을이 이렇게 될 것이다.

정태인 시인의 사람 인(人)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사람에 기대어 사는 우리 마을(사람)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