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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칼럼

왜 지금 사회적경제인가?


왜 지금 사회적경제인가?

 

(사)충북사회적경제센터 사무국장 박 대 호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에서 빈민운동과 지역운동의 맥락 속에서 제도화 이후 급속한 확장을 보이고 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자활제도, 2003년 사회적일자리,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2010년 마을기업,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여건과 함께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채택되면서 시민의 삶과 밀접한 분야의 실천적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사회적경제 정책을 시정 전반에 접목하는 서울시나 내발적 발전전략으로 사회적경제를 구현하고 있는 충청남도의 사례는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주도성 보다는 제도로부터 견인되는 흐름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 속에서 사회 변화의 새로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는 주류 경제학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으로 시장기능을 역설한 애덤스미스(Adam Smith)에 의하면, 우리가 푸짐한 저녁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어부, 농사꾼 등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산이 그저 자기 가족의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리의 식탁 위에 그 음식들이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아야 했을 것이다.
여기에 시장의 명암이 존재한다. 사실 시장은 소비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재화와 서비스가 교환되는 장이기도 하지만, 이윤동기에 의해서 작동되는 경쟁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애덤스미스는 시장의 자유로운 교환기능을 통해서 경제 주체들의 상호이익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자기조절 기능의 순기능이 아닌, 독과점으로 지향되어 있는 이윤극대화의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시장경제가 가지는 삶의 필요를 충족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환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이윤의 극대화가 실현되는 한에서 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가 매일 기대하는 푸짐한 저녁식탁은 자본주의의 이윤동기가 충족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 되었다.
자유로운 이기심의 경쟁질서가 모두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주류경제학자들의 가정은 온전히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 신화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간 정보의 비대칭성, 소수의 집단에게 편중된 시장권력, 단기 이익을 위한 기회주의적 투자, 사회구성원 모두가 누려야 할 공공재의 상품화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마음씨 고운 푸줏간 주인의 인심과, 팔팔한 생선으로 만선이 된 어부의 기쁨, 그리고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약하는 땀에 젖은 농심의 소박한 이기심은 촌스러운 추억으로 남아버렸다. 시장교환을 통한 상호이익은 가능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다양한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대안적 전략이다. 매년 대륙별 이상기후와 다국적농기업의 농간으로 인한 식량위기는 식량 자급률 22%인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허약함을 확인하게 한다.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조달과 그나마 화석연료의 잔존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종다양성 훼손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다방면의 위기들은 한 분야에서 끝나지 않고 분야간 연쇄반응을 통해 우리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위기에 대한 대안적 삶의 전환이 다른 방식의 경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호혜적 대안질서를 만드는 일과 시장화 속에서 훼손되었던 지역사회의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순기능을 통해 돈벌이로서의 경제가 아니라 사람이 살기위한 ‘살림 살이’로서의 경제를 복원해야 한다. 사회적경제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무르익는 상황에서 아직 이에 대한 해석과 역할이 정돈되지 못한 상황이다. 사회적경제는 역사적 위기마다 이윤과 경쟁보다는 시민의 공익과 협력을 선택해 왔고 사회적경제조직을 통해 실천해 왔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론화가 더디게 진전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실천론의 부재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충북지역의 사회적경제 관련 당사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