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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칼럼

꽁보리밥과 청양고추

[열린세상] 서은선 사회적기업 영동군 사회서비스센터 대표
2012년 05월 24일 (목) 21:39:01 지면보기 19면중부매일  jb@jbnews.com
 
 
하루종일 놀아주는 친구하나 없이 동네어귀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며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도 심심하면 자신에게 응원하듯 박수치며 재미있어하는 사람이다.

돌, 구슬, 국자 등 둥글게 생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머니가 터질 듯 넣고 다니는 장난꾸러기 그 사람은 계절에도 무관하게 행동한다.

동물들이 영역 표시하듯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 여러벌을 걸치고 자기가 생활하는 장소의 팬스나 나뭇가지등에 하나 둘씩 옷을 벗어 걸어두곤 주위사람들에게 내 영역이라고 주장하듯 행동했다. 

영동군사회복지협의회에서는 7년전부터 지적장애아동들에게 주간보호프로그램이 진행되고있다. 

그러한 인연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간보호프로그램이라는 이름하에 가족처럼 지내면서 인연이 된 그 사람은 30대 후반의 지적장애3급이며 시력을 잃어가는 아버지, 몸이 편찮은 어머니와 함께 어느 골목길 작은 집에 거주하고 있다. 30대 후반이라지만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행동들로 우리는 늘상 그에게 위로를 받곤 했다. 

불안한 환경은 무관하게 그 사람은 항상 밝고 행복한 사람이었고 그가 싸가지고 오는 도시락은 내 마음을 한껏 행복하게도 혹은 가슴이 미어지게도 했다.

꽁보리밥과 보리딩기장, 청양고추 5개를 검은 비닐봉투에 넣어 들고왔다.

그뿐이랴.

누런색의 양은냄비에 담겨진 배추국을 통째로 들고 어찌나 씩씩하게 들고오던지 더러는 마음이 짠하여 아련했다.

아픈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점심도시락을 직접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다. 혹여 누가 뺏어 갈까, 아니면 행여 도시락을 잃어버릴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운 날씨에도 상관없이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항상 부모님을 생각하는 그 아이는 매일매일 사무실에 설치된 정수기에서 생수를 받아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본인도 좋아하는 치킨, 불고기같은 음식을 준비해 줄때면 잘 먹지 못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부모님께 가져다 드릴 여분의 음식을 보여주어야만 그제서야 환한 웃음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 

"이히히… 이히히…" "엄마꺼… 엄마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자랑을 한다. 

행여 아는 사람이 조금 달라고 하면 "안돼요 엄마꺼"하면서 가슴에 꼭 품는다. 무사히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이 드시기 시작하면 본인도 먹고 싶은 충동을 이기기위해서인지 집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어느때 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동네어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어느날 집터에 도로가 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그 효자는 고향을 떠났고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가정의 달 5월은 감사와 나눔의 달이다. 

푸르른 초록과 태양이 빚을 발하고 있는 5월 나는 웃음 많고 효심이 지극했던 그 사람의 훈훈한 효심이 그립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시간을 뺏기고 주말은 과외로 가족간이라고는 하지만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노인요양원에 노부모들을 맡겨놓고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거나, 기념일에 안부전화 한통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모습. 

비록 소박한 밥상일지라도 부모님을 먼저 섬기면서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을 그 효자는 가정의 달 5월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화두를 던진다.